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문단 편집) == 후폭풍 == [[결선투표제]] 때문에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항상 개나 소나 모두 출마한 다음에 [[결선투표제|결선 투표]]에 진출한 후보를 중심으로 좌-우 진영이 뭉치는 형태였다. 거기에 [[극우]]나 [[극좌]] 후보는 대체로 득표율이 한 자리대라서 결선투표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중도우파 후보 1명, 중도좌파 후보 1명이 결선투표에서 맞붙는 구도였다. 그런데 이 법칙이 극우와 극좌의 약진과 함께 2002년도에 무참히 깨져버린 것이다. 이런 결과에 놀란 프랑스 정치권은 이후 선거부터는 사전에 확고한 정책연합과 후보단일화를 구성한 이후에 1차투표에 임하고 있다. 당시 현역 총리이자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리오넬 조스팽]]은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이게(3위 탈락이) 사실이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 라는 폭풍 선언을 해버렸고 결국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게 됐다. 덕분에 좌파진영은 대거 멘붕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도 [[니콜라 사르코지]]에게 패배하는 등, 한동안 힘을 못쓰다가 간신히 2012년에 [[프랑수아 올랑드]]가 승리하면서 [[프랑수아 미테랑]] 퇴임 이후 17년 만에 다시 정권을 되찾아 왔다. 반대로 우파는 축제 분위기 였으며 뒤이어 치러진 총선에서 프랑스 하원 577석 중에서 무려 357석을 가져가는 대승을 거두며 자크 시라크는 다시 실권을 되찾았고 임기 12년을 무사히 마치고 퇴임하였다. 사실 시라크의 경우에는 '''3선 출마도 가능했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만 해도 프랑스 헌법에는 '''연임 제한이 없었기에''' 잘하면 '''17년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게 흠이었고 2004년 지방선거에서 대패하고 2005년에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유럽연합]] 헌법 비준안 마저도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레임덕]]이 극심하게 와버린 바람에 결국 2007년 대선 막바지에 재출마를 포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